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악적 특징은 ‘아우슈비츠 바깥’이라는 공간 설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을 귀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다. 화면은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사운드는 그 일상이 놓여 있는 장소의 실체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그 결과 관객은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을, 소리를 통해 상상하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바깥을 채우는 비가시적 사운드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특징은 ‘직접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수용소 내부를 철저히 배제하고, 그 외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러나 음악과 사운드는 이 공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저음, 불분명한 울림, 지속적으로 깔리는 드론 사운드는 명확한 출처를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은 이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공포로 작용한다. 음악은 설명하지 않고, 위치를 특정하지 않으며, 대신 공간 전체에 스며든다.
이 사운드는 장면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대사보다 크지도 않고, 사건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한다. 그 결과 관객은 화면 속 평온함과 귀로 감지되는 불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이는 아우슈비츠라는 장소가 물리적으로는 담장 너머에 있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현실임을 소리로 체감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일상의 소리와 음악이 겹쳐지는 공간적 불안
이 영화에서 음악과 환경음의 경계는 거의 무너져 있다. 새소리, 바람, 발걸음, 집 안의 소음 같은 일상적인 사운드들이 음악적 질감을 띠며 사용된다. 이러한 사운드들은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동시에 어딘가 불편한 잔향을 남긴다.
특히 조용한 장면일수록 이 효과는 강해진다. 대사가 멈춘 순간에도 완전한 침묵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주 낮은 주파수의 소리나, 귀에 걸리는 듯한 음향이 공간을 채운다. 관객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에서조차 긴장을 풀 수 없게 된다.
이 사운드 설계는 ‘아우슈비츠 바깥의 일상’이라는 설정을 더욱 잔인하게 만든다. 인물들은 정원을 가꾸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음악과 소리는 그 일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한다. 음악은 감정을 유도하지 않고, 대신 공간의 도덕적 균열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관객은 소리를 해석하려 애쓰게 되고, 그 해석 과정 자체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느끼게 하고, 그 공간의 무게를 관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공간의 윤리를 드러내는 음악적 태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악은 윤리적 선택에 가깝다. 이 영화는 비극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며, 감정을 과잉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음악을 통해 관객을 안전한 거리에서 밀어내고, 불편한 위치에 머무르게 한다.
음악은 절대 감동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감정의 해소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풀리는 구조가 없기 때문에, 관객은 끝까지 압박을 느낀다. 이는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을 ‘이해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와 말미에 사용되는 사운드는 서사의 일부라기보다, 공간 자체의 울림처럼 느껴진다. 이 소리들은 인물의 감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관객에게 이 장소가 가진 역사적 무게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결국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기능적인 쾌감을 배제한다. 대신 관객이 공간을 체험하도록 강요하며, 듣는 행위 자체를 윤리적 경험으로 만든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음악적 특징은 아우슈비츠의 ‘바깥’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해진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들리게 하고, 평온한 일상 속에 스며든 폭력을 소리로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감정을 이끄는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진실을 숨김없이 전달하는 증거다. 그래서 이 작품의 사운드는 듣기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간이 남긴 잔향처럼, 관객의 감각 속에 오래 머문다.